본문 바로가기

일상

사과와 염치에 대한 단상 A short thought about apology and sense of shame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생활을 할 때,

 잘 맞는 부분도 있지만 아닌 부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상대방에게 지적을 당할 수가 있는데,

 이 때, 사람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사과부터 하는 사람과

 자기 변명부터 늘어놓는 사람으로 말이다.

 

 사람은 웬만한 행동에서는 다 이유를 가지고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지적한 일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정당성은 다 있다.

 그래서 지적한 사항에 변론하고자 하는 마음도 누구나 다 있다.

 지적 당했을 때, 사과부터 하고 이유를 얘기하는 것과

 자기 변명부터 늘어놓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단순히 보이기에 좋냐 나쁘냐의 차이만이 아니다.

 전자의 경우는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해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는 자기 외에는 안중에 없기 때문에 생겨난 행동일 것이다.

 

 이 글 처음에 언급한 부분을 상기해보자.

 사람이 관계를 맺으며 생활할 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왜 그렇겠는가? 서로 성향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정보,

 같은 것을 바라보거나 경험할 때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의 생각으로 이뤄진 세계관이 부딪친 것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세계관에 침범했다고 볼 수 있다.

 생각이 곧 개인을 대표한다 볼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존중은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에서 사작한다 할 수 있겠다.

 사과부터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해당 사안에 대해 타인의 생각을 우선시 한다는 데서 오지 않는가?

 자기 변명부터 늘어놓는 다는 거는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우선이라는 사상에서 나온 행동일 것이다.

 후자에서는 타인 존중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의 세계관에 침범했는데,

 사과가 없다면 당연히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사과한다는 거는 자신이 잘못했고, 잘모르고, 부족한 부분을 인정한 다는 의미다.

 그러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을 소위 말해 염치라고 할 수 있다.

 염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개선이 되고 발전이 되는 것이다.

 사과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은 염치없다는 말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자신의 개선 사항을 모르거나 알아도 개선 사항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개선에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도 개선없이 고문관 짓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전과 똑같이 무능하고, 무식하고, 무례하다.

 요즘 배려가 의무처럼 강요되고 있는 시기에

 저런 부류의 인간들이 설치는 꼴을 보고있자면 울화가 치밀어 오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무능, 무식, 무례를 벼슬처럼 생각하고 배려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욱 소위 말하는 '노답'이 되어가고 있다.

 

 염치가 있다는 건 자기가 침범한 타인의 세계를 아는 것이며,

 이로써 변명보다는 사과라는 행동이 먼저 나오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무능, 무식, 무례를 개선해 나감으로써

 자신과 세계의 균형을 잡아나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염치 없는 자들이 주변과 마찰이 많고,

 무능하고 어리석은 행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자신과 세계의 균형을 못 잡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배려라는 것은 염치가 있는 자에게 주어진 선물이 되어야지,

 염치가 없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세상에 암덩어리를 키워준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