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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텃세에 대해서 About being territorial

사람이든 조직이든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는 항상있다.

뭔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게 득을 줄 지 실을 줄 지 확신이 없다.

혹시 실을 주다못해 존재의 위협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사람 관계에서 이런 상황이 있을 때

새로운 인간이 뭐하는 인간이고 믿을 수 있는 놈인지 모르니까 경계를 하게 된다.

경계를 하는 언행에서 기존에 조직에 있던 인원과 새로운 자의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기존의 인원들은 자기와 조직을 지키기 위한 본능이 발현된 것인데,

새로운 자는 이것을 텃세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게 기존 인원들의 과도한 반응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자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텃세라는 단어가 먼저 온 자가 나중에 들어온자를 업신여기는 행위라고 하니

업신여기다라는 단어의 범주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업신여기는 행위는 존중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서로 어디까지 인정해줘야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이런 행위가 거의 없어질 것이다.

이런 합의는 관습이나 계약 혹은 법률 등으로 정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자가 기존에 있던 사람에게 묻거나 규칙을 읽어서 지키면 될 일이다.

여기서 새로운 자에게만 의무를 부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기존에 있는 사람들은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기여한 사람으로 조직의 신뢰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조직에 기여한 것이 없는 신출내기가 자기에게 맞춰달라는 건 어불성설 아니겠는가?

그러니 새로운 자는 과도한 피해의식을 가지지 말고 기존 규칙을 잘 지켜 조직의 신뢰를 받도록 노력해야

텃세라는 것을 덜 받을 것이라고 본다.

사실 신출내기는 해당 조직에 관심이 있어 조직에 들어간 것 아닌가?

관심있으면 조직에 대해 알아보거나 이해하려하는 자세는 당연한 것 아닌가?

물론 기존에 있는 자들도 새로운 자에게 경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마다 고유성이 있는데, 그걸 무너뜨리게 강요한다든가

합의된 규칙도 아닌데 되도 않은 걸로 꼬투리를 잡으면 안 되지만 말이다.

요즘 보면, 인종 차별이나 외국인 차별 같은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이걸 왜 굳이 인종이나 외국인이란 용어를 붙여 프레임을 만드는 지 모르겠다.

이것도 그냥 텃세로 포함시키면 된다. 저런 것들 다 불합리하게 업신 여기는 거 아닌가?

그리고 이 말 자체가 남용되어 합리적인 구별도 비합리적인 차별로 덮어씌우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 동화될 생각이 있다면, 애당초 한국에 대해 사전에 잘 알아보거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려는 노력을 해야하는 게 맞다.

그래야지 한국인들이 믿을만한 사람으로 신뢰하지 않겠는가?

물론 한국인의 불필요한 편견이나 비합리적인 차별은 줄여야 겠지만 말이다.

요지는 텃세와 합리적인 경계를 구분하고 신입은 기존에 있던 사람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텃세를 부리지 않도록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자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