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부로 이 법이 시행되어 여러가지 말이 많은 것 같다.
벌써 이 법에 적용받을 사건들도 여럿 생긴걸로 보인다.
사망한 경우 뿐만 아니라 다친 경우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부모들도 상당히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등 하교시 차량을 이용해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복귀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라는 것이 자기 자신만 조심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 이런 건 진작에 예상을 했었다.
이거 민식이 법 국회 통과되기 전에 인터넷이 나돌았던 짤이다.
이걸 예측 못해서 지금 저 난리 피우는 사람들이 있었던 걸 보면,
언론이 민식이 부모를 이용해 감성팔이 했던 게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법이란 것은 관리의 영역이고, 시스템의 적용을 받는 자들에게 모두 적용이 되므로,
보수적이고 신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성의 영역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법의 일관성이 생기고, 사람들이 법을 믿고 따를 것이 아니겠는가?
사건에 대한 감정이나 반응으로 법을 다루게 되면,
법의 일관성이 사라지게 되므로,
사람들이 법을 믿지 못하여 법을 지키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눈치를 보게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임기응변에 의존해서 살아가므로 사람이 비열해질 것이다.
불안정한 세상에서 순간 순간 반응으로 살아가는 게 인간의 삶인가? 짐승의 삶 아니겠는가?
인간이 짐승들에 비해, 문명인인 야만인에 비해 더 많은 걸 누리고 사는 이유가 뭐겠는가?
일관성 있는 규칙으로 인한 조직력, 효율로 이뤄진 결과물 아니겠는가?
또한 일관성 있는 규칙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하지 않는가?
일관성 없는 규칙 하에 있으면, 소수의 강자를 제외하고 자유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과도한 감성팔이는 문명의 효율과 개인의 자유, 인간을 비열한 짐승으로 만드는 독약과도 같다.
인간의 고유성과 자유를 위해서라도 이성적인 사고 방식은 필수이다.
이런 이성적인 사고는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오는 감정과 다르게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얘기와도 같다.
과도한 인내를 요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인내가 필요함에도 참지 않는 건 야만이다.
인간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므로,
각자의 존재나 영역을 지키고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려면 질서가 필요하고,
질서는 개 개인의 본능과 방향이 다를 수 있으므로 본능에서 방향을 돌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자유를 위해 인내가 필요하다는 역설적으로 보이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요즘 자유라는 개념의 오 남용으로 인내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
그래서 감성팔이가 통하고, 규칙의 일관성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본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므로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성과 인내가 필수이다.
방종을 자유로 착각하여 세상을 야만으로 만들지 않고,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이 인간의 고유성을 지키고 짐승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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