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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악연 Negative karmic bond

혼자 동떨어진 곳에 살지 않는 이상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엮일 수 밖에 없다.

엮이는 사람들 중에 좋다 생각드는 사람도 있고,

나쁘다 생각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뭐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 수 있다면야 참으로 좋겠지만,

인생이 뭐 마음가는대로 돌아가는가?

나쁘다 생각되는 사람 중에 한 번 보고 말 관계면,

그냥 만나지 않으면 되니 별로 신경 쓸 게 없다.

물론 자주 색다른 나쁜 인간을 만나게 되면 얘기가 조금 달리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장 골치를 썩이는 경우는

계속 만나야 하는 나쁜 사람이다.

 

악연의 정의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관계가 지속되는 나쁘다 생각되는 사람을 얘기하면 맞지 않을까 생각든다.

악연이란 개념이 상대적이라 할 수 있지만,

상대적이라고 해서 없는 개념으로 치부하고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이상하게 이해관계나 취향이 안 맞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뭐, 서로 타협하거나 

자신이든 상대방 쪽이든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방향으로 가서 

악연을 없애는 방법도 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타협이란 것은 서로가 참고 감내해야 하는 게 있다는 얘기이므로,

본디 자신이 갖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리듬과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즉, 자신에게 맞는 흐름의 방향이 있으면,

방향을 바꿔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얘기이다.

즉, 스트레스가 누적된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육체적인 부분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지만,

정신적 요소인 인내심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아니다.

정신적 요소도 우리 몸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물리적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와 유리된 세계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보면

스트레스 누적으로 몸과 정신이 피폐함을 가져오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서로가 만나는 빈도가 높을수록 이런 속도가 더 빨라지게 되며,

관계가 지속적이기 힘들고 일시적인 경향으로 가게 된다.

한 쪽에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경우에는 위 경우보다 더 심해진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위에서 말한 경우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내심의 한계는 각자의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물리적 정신적 여유가 있어

저런 스트레스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면,

악연이란 개념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언제나 여유있을 때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여유가 없으면, 인내심의 한계가 낮아지기 때문에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도 더 크게 느껴진다.

버티고 생존하려면 악연이란 개념을 적용하여 분류하고 대처를 해야한다.

재한된 자원으로 성과를 내려할 때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는가?

그와 같이 정신적 에너지에도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 

악연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매커니즘을 파악하면,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라는 얘기가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사람이란게 살아온 배경, 성향 등이 쌓여서 지금의 성질을 가진 복잡한 존재이므로,

특별한 계기나 지속적인 인내로 바꾸려는 노력 없이는 바뀌기 힘들다.

특별한 계기는 운에 맞겨야하고, 지속적인 인내는 효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악연이 없다는 생각은 자신을 과신하는 교만한 생각일 수 있다.

악연이란 개념을 인정하고 거리 둘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며

좋은 인연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